다다(Dada, 1915)는 파괴적 태도와 반문화적 과격한 성향을 띠고 있으며, 1925년 Neue Sachlichkeit의 신 즉물주의 선언과 1924년 초현실주의 운동의 전단계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다다는 1916년 취리히에서 탄생을 알린다. 전쟁의 고통 속에 화가, 작가, 연극인들이 피난처를 찾게 되고, 예전의 세계에 대한 참조도 없이 앞으로 다가올 미술세계를 의미 한다 . 그리고 그 소재는 언어의 일부분과 ‘현실적 삶의 잔해’로 구성되었다. 다다이스트 행동의 특성은 평범한 현실세계를 예술적 소재 또는 모든 예술적 영역에서의 소재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소재의 재평가, 즉 예술의 대중화는 다음과 같은 장르들의 폐지를 초래한다. 이를테면 그림과 조각 사이의 경계가 없어지고 <장식>미술은 더 이상 <하위>범주로 취급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무용과 연극사이, 음악과 시 사이의 경계도 사라진다.
다다는 삶의 각 부분의 개성에 가치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삶의 보든 순간이 소중하고, 삶은 그 각각의 부분들 속에서 살만한 가치가 있으며, 각각의 세부적인 것과 그 단편은 바로 전체를 의미하고 때문에 귀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소재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즉, 우리가 찬양하는 단편의 구조적 가치나, 우리가 부르는 음절의 리듬감, 가장 작은 물체의 부분 또는 절대적인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합성재료의 앙상블아쥬는 초기 미래주의에서 큐비즘적 분할(아르키펜코)과 그 후에 비 객관적 분할(타틀린)이라는 수단에 의해서 표현되었는데 현재는 우연성의 영역을 정복하고 있다. 무의식은 예술 속에서 그 자치권을 획득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관리자가 되기도 한다. 언어와 관계된 새로운 경향은 다다이스트들을 음성학적인 시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1916년의 휴고 발과 1918년 하우스만 슈비터스등이 그들이다. 1916년 회화에서 꼴라쥬, 조각에서의 앙상블라쥬가 시도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다다이즘의 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꼴라쥬로 그것을 대체시킬 뿐이다. 만 레이(Man ray)의 첫 화집 “달콤한 들판”은 1922년 짜라의 훌륭한 서문과 함께 빛을 보게 된다. 그의 작품은 구상의 수법 면에서 <反 회화주의>적 기법과 주제 면에서 反숭고적인 기법을 가진다. 이는 예술가의 특성을 거부하고 메카니즘 방식으로 제작된 회화의 전개이다. 1915년 피카비아와 뒤샹의 행동특성은 선언서로 표현된다. 파리 다다는 1920년 파리에서 다다이즘의 축제가 열리고 1921년 몽테뉴 화랑에서 다다 살롱전에서 파리다다 그 절정과 동시에 종말을 고한다. 프랑스 다다는 브르통과 짜라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데 그러나 브르통의 문학에 대한 집착으로 서서히 쇠퇴한다. 브르통의 문학의 정신적 근거는 고전에 있었으며 파리다다의 쇠퇴 이후 브르통은 평생 고전주의적 관점에 충실한다. 프랑스 다다는 이후 폴란드, 세르비아에까지 영향을 준다.
조형분야의 가장 핵심적 다다이즘 선언서의 하나는 베를린, 슈투름 화랑에서 1919년 슈비터스의 콜라주전에 즈음하여 <메르츠 Merz 회화>를 공표한 것이다. 그리고 1920년 봄 전시회에서 최초의 국제 다다성제(Erste Internationale Dada Mese)에서 베를린 다다운동은 정점에 이른다. 바더의 기념비적인 앙상블라쥬는 “독일의 위대함과 쇠퇴”를 나타내고 “다다 연감”이 휴엘. 센벡에 의해 출판된다. 독일의 다다는 정치적 작품 속에서 합성사진의 급증을 보인다. 슈비터스는 다다의 이상을 가장 잘 구체화시킨 화가로 영국 팝 아트의 정신적 아버지로 영향을 끼친다. 독일 다다는 20년대 초 벨기에, 네델란드에 까지 이른다. * 마리네티의 이념은 조합성과 자유시의 역동적 강화에 있다. 이것은 기계와 도시에 있는 내재적 현재성의 새로운 감성을 반영할 수 있게 한다. 관습적 형태나 과거로의 회귀에 대항하고 작업의 역동적이고 자율적인 면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보치오니는 <오브제와 주위 환경의 완전한 결합>을 이룩하려고 <평면의 교차>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오브제를 입체적으로 분해하여 표현한 그림으로 ‘역동성’과 ‘동시성’을 나타낸다. 여기서 조형적 역동주의(Dynamisme)는 <보편적인 역동성의 어떤 고정된 순간>이 아니라 <역동적인 감각> 그 자체 위에 축을 둔 회화의 제작이다.